대개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들의 감각은 기분좋은 것으로서 느낀다.

그는 단단하며 동시에 섬세하고 좋은 목재로 새긴 작품에다 비교할 것이다. 그로서는 유익한 것 만을 맛좋게 느낀다. 그러나 유익이라고 하는 것도 한도를 넘으면 그에게는 맛이 없어지고 식욕은 저하된다. 그는 상처받더라도 거기에 무엇이 잘 듣는가를 헤아려 안다. 그를 넘어뜨리지 못하는 한 도리어 그는 더욱 강해진다. 그는 그가 보고 듣고 체험한 것에서 하나의 전체를 집성(集成)한다. 그는 하나의 선택된 원리이다. 그는 많은 나쁜 것을 제거한다. 그는 책과 사귀려고, 혹은 풍물과 사귀려고 항상 동아리 속에 있다. 그는 선택하는 것에서, 인용(認容)하는 것에서, 신용하는 것에서 자기의 사려와 고의(故意)의 긍지를 위해서 저절로 몸에 익숙해진 그 완만함을 갖고서 말이다.

자극이 다가오면 이것을 음미한다. 자기 편에서 이것을 구해나서는 것과 같은 일은 좀체로 없다. 그는 '불운'이라든가 '죄'같은 것을 안 믿는다. 그는 자신이 되는 타인이 되든간에 그것은 그것으로 정리해 버린다. 그는 잊는다는 것을 터득하고 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그를 위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는 강하다 - 참으로 나는 데카당의 반대물이다. 여기에 묘사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의 '왜 나는 이렇게도 현명한가' 편에서
내 일기가 시작되던 두 번째 글에 담긴 이야기. 그 때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재수없음을 느꼈던가. 마지막에 나는 '이 사람을 보라'가 아닌 '이 개세끼를 보라'라고 출처를 바꿔 달아놓았으니.. 하지만, 묘하게도 내가 나 자신에게 원했던 '나'가 바로 위와 같은 모습이었다.

뭐, 따지자면, 지금 어느 누가 보아도 '니 잘났다, 니 혼자 잘먹고 잘살아라~, 재수없는 놈'하며 당장에 외면해버릴 만한 구석이 곳곳에 드러난다. 하지만 좀더 솔찍해져본다면, 과연 이 세상에서 몇명이나 '겸손'이라는 덕을 '처세술'로 이용하지 않은 채, 하나의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던가? 그리고 과연 '겸손'이라는 것이 '정신'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던가? 그것이 진리이던가?

후훔... '말'가지고 늘어지지 말자... 제발..

여하간, 나는 꽤나 그러한 '나'를 절실히도 원했던 것 같다. 아니, 그 말은 나의 뇌리에 박혔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도 내가 나의 행복을 원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만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가 '멋있어서'그랬던 것일까?

다시한번, 여하간, 그러하지 않은 '나'를 보면서, 그와 나를 비교하면서 나는 고통스러워했다. 맞다. 그 당시 나를 옮아매던 키워드는 '비교'이었다. 어떤 사람이건, 어떤 무엇이건, 나, 혹은 나에게 속한 무엇과의 '비교' 모든 곳에서의 '비교'. 그리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피곤하기 짝이없게 만드는, 나 자신이건, 내 주위 사람에건 간에게의 '경쟁심'. 아주 타당하지 못한 그 마음.

내가 그런 마음을 갖게된 원인을 나는 좆같은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서 찾는다. 좆지랄 떠는 좆같은 선생, 그리고 좆같은 시스템.

Fell on Black Days by Soundgarden


이 노래에 뭔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모르겠다. '거무튁튁한 날로 빠져들다', 제목은 그렇게 해석되나? Superunknown이란 이 앨범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지만, 이 곡 역시 음침하기는 마찬가지다. 뭐, 그런 음침한 내용이 담겨있겠지.

N.EX.T의 '아! 개한민국'을 올리려 했더니만, 파일 크기가 너무 크단다. 그 다음 찾은 것이 이 앨범의 최고 히트곡인 'Black Hole Sun'을 올리려 했더니만, 이 역시 마찬가지. 헌데, 이 곡은 대강 제한 크기 안에 들어가는거 같다. 세 곡 모두 음침하기는 마찬가지.

그래, 그랬었다. 난 그 당시, 꽤나 음침한 놈이었다. 그리고 이런 음침한 그림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 대강 맘 상태와 맞아 떨어졌다.


the Anguish of departure by Giorgio de Chirico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어쨌건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