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Master of Puppets. 메탈리카(Metallica) 3집 커버

행여나 해서 붙여둔다. 아래 글은 기술(技術)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기술만을 강조한 교육을 비판한 것이다. 일단 나 자신이 기술자이거니와, 나아가 기술/기능이 안되면 창작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speciality와 generality 모두를 중요시 여긴다고나 할까.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원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근대 교육의 시발점이 소위 전인교육(全人敎育)이 아니라 일시키기 편하게 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근본적으로 피교육자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자를 위한 교육, 즉 지배자를 위한 교육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주요 교육 과목은 자아성찰, 자연/체제 이해, 가치관 확립 등의 전인교육과는 거리가 먼 '기술(技術)'이 되었겠고. 

두말할 나위 없이 상당히 음모론스러운 주장이다.

당시 이 이야길 들었을 때 그런가부다하고 걍 넘어갔는데, 오늘 프랑스 고딩 졸업 시험 - 대입 자격 시험이란 바칼로레아의 문제를 접했을 때 위 논리가 확연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울나라 교육 현실이 그 즉시 떠올랐다. 
생각하는 법이 아닌 외우는 법을 요구하는 꼴이 되어버린 현 울나라 교육 현황 - 주요 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의 성격을 염두해두면서 아래 바칼로레아 문제를 보자.

바칼로레아 문제 예(클릭)

한눈에 봐도 이는 국, 영, 수가 아니라, 철학 문제이다. 게다가 객관식은 오간데 없고 전부 서술형으로, 복합적 사고를 기반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논리를 펴야 하는 문제이다. 단편 지식만으론 택도 없는 것은 당연하며, 단기/속성 교육 과정, 소위 주입식 교육으론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제한된 시간 내에 풀어야 하는 시험이라는 속성 상 시험 시간 내에 새로이 고안해낼 수도 없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가치관의 자연스러운 서술을 통해서만 풀이가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질문은 자의이건 타의이건 이 세상을 사는 데 끊임없이 부딛히게 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핵심 질문으로 언젠가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상기 문제에서 보인 각 주제/용어의 사전 이해를 바탕으로 수험자의 생각을 묻는 문제이며, 이는 피교육자의 사고력을 증진시키겠다는, 궁극적으로는 피교육자 자신을 위한 인생 교육 목표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교육 목표가 실제 무엇이 됐건, 적어도 단편 사고의 '기술자'를 키우겠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반면, 울나라 교육 현실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영/수 만 놓고 보자. 서두의 논리를 강조하여 해석해보자면, 국어 - 일 시키기 위한 소통 수단, 문서 작성용 / 영어 - 기술 대부분이 외국에서 왔으니 / 수학 - 기술의 기반 언어가 수학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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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들 과목은 사고를 위한 핵심 도구란 점, 충분히 인정한다. 그럼 이들 과목을 기반으로 종합적 사고를 키우는 이렇다 할 과목, 프랙티스는 어디에?
이를 위한 대표 과목인 철학 - 매우 낮은 비중의 '윤리/도덕'이란 '속성 완결 - 단순 암기과목'의 하위 챕터로 밀려난다. 이즈음 되니, 말이 좋아 철학이지, 이론명 암기 - 해당 철학자 매핑 정도 이루면 성공이다. 게다가 철학의 주요 받침이자 인생 선배의 교훈 덩어리인, 인생살이의 핵심 기반인 '정체성 확립'을 이루게하는 '역사'는? 어느세 '선택' 과목. 하다못해 나 중고딩 시절만해도 역사는 필수 과목이었다(이 부분은 욕이 안나올래야 안나올 수가 없다. 썅 개 코미디). 위에서 논하는 과학, 정치, 권리 등은... 이를 통합할 철학이 그 모양이니 별 수 없다. 걍 각개 격파 과목.

이즈음 되면, 서두에서 논했던 음모론을 의미있게 받아들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위 음모론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전적으로 비 전문가인 나 마저도 이 정도로 문제 파악이 가능함과 동시에 공개적 비판이 가능하기에, 더군다나 울나라 교육시스템은 널리 알려진 주요 이슈거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위 비판은 한참이나 식상한 논리일 것이다. 더욱이 요즘 대학 입시에서 '논술'이 한참이나 강조되는 현 추세를 보면 음모론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식상해져버린) 비판을 재탕 안할래야 않을 수가 없다. 여전히 위 음모론이 상당 부분 먹혀드는 교육 현실, 그리고 이 현실이 수십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점, 나아가 선택 과목이 되어버린 역사 과목의 격하, 정신없이 보습학원에 쫓겨다니는, 자생적 사고를 할 겨를이 더욱 없어진 요즘 아이들.
과연 이 교육 환경이 개선되가고 있는 건지, 심히 의심스럽다. 논외이긴 하지만 개선은 커녕 악화되가고 있다는 건 뚜렷히 보인다. 이젠 개천에서 용날 일이 없다는게 일반 상식이 되었으니.
Posted by 어쨌건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