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참~ 묘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왜 그 곳에만 가면 그리도 긴장이 되는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적어도 언어로서의 '의미'는 분명 많은 곳인 것은 확실하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벼라별 의미는 다 가져다 붙이고 있으니깐. 그리고 실제로 붙'어버린' 것도 많으니깐. 그당시는 억지로 가져다 붙인 것이 확실하고,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흐름에 대한 관성 때문인지 실제로 의미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저절로 붙어버린다. 한마디로 억지로 가져다 붙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떼어버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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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2 00:03 2005/08/0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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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인간의 얼굴이 주는 압도감은
다 사라져 버리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곤 이제 나 밖에 없다.

- 보들레르

For returing to the Source (3-1) : The Rain Song(Led Zeppelin)에서 계속하여..

어쨌건간에, 어찌하다 그리되었던 간에, '외로움'이란 홀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와중에 누군가를 그리는 고통스러운 마음일 뿐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이유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 즉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닥쳐있음과 동시에 그 상황을 타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이란 단지 그 상황이 주는 감각을 칭하는 '어휘'일 뿐이지 고차원의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 '외로움'이 주는 고통을 느낀다면, 오히려 함께하는 중에 고통이 더 크다면, 그것은 더이상 '외로움'이 주는 것이 아닌가? '외로움'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고통이 크건 작건 간에, 감각적으로 동일함에도 말이다. 그러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지?

난 지금 '소외감 - 왕따된 상태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With or Without you by U2


이제 그러한 고통에서 벋어난지는 꽤 오래되었다. 모르겠다. 내가 그 상황을 극복해내서 그런 것인지, 혹은 절묘하게 그런 상황을 피해나가는, 혹은 만들어내지 않는 능력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는. 어쨌건 근간에 와서는, "With or without you, I can't live"가 아니라, "anyway, I can live"가 된 듯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2005/05/17 05:13 2005/05/17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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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전문 용어로 뭐라 칭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어디서 주워들었던 간에, 나는 그것을 "도그마에 빠져있다."라고 표현한다. 그 상태는 '홀린', '미친'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홀린', '미친'상태는 자신을 그러하도록 만든 주체를 그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반면, '도그마에 빠져있는' 상태는 어쨌건 간에 인식 정도는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쨌건간에 인식 정도는'이라고 아주 애매하게 표현했다. 이 말은, 홀리도록 만든 주체에 대해 그 자신이 명확히 실체를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당시 나는 그러한 '도그마에 빠진'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홀리도록 만든 주체, 즉 도그마는 수도없이 많았다.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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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5 05:03 2005/02/1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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