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ster of Puppets. 메탈리카(Metallica) 3집 커버
행여나 해서 붙여둔다. 아래 글은 기술(技術)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기술만을 강조한 교육을 비판한 것이다. 일단 나 자신이 기술자이거니와, 나아가 기술/기능이 안되면 창작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speciality와 generality 모두를 중요시 여긴다고나 할까.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원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근대 교육의 시발점이 소위 전인교육(全人敎育)이 아니라 일시키기 편하게 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근본적으로 피교육자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자를 위한 교육, 즉 지배자를 위한 교육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주요 교육 과목은 자아성찰, 자연/체제 이해, 가치관 확립 등의 전인교육과는 거리가 먼 '기술(技術)'이 되었겠고.
두말할 나위 없이 상당히 음모론스러운 주장이다.
당시 이 이야길 들었을 때 그런가부다하고 걍 넘어갔는데, 오늘 프랑스 고딩 졸업 시험 - 대입 자격 시험이란 바칼로레아의 문제를 접했을 때 위 논리가 확연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울나라 교육 현실이 그 즉시 떠올랐다.
생각하는 법이 아닌 외우는 법을 요구하는 꼴이 되어버린 현 울나라 교육 현황 - 주요 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의 성격을 염두해두면서 아래 바칼로레아 문제를 보자.
바칼로레아 문제 예(bullet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1장 인간(Human)
-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 꿈은 필요한가?
-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 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 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 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 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 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 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 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 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 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 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 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 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 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 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 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 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 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 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 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 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 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 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 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 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 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 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 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 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 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쫓아도 좋은가?
한눈에 봐도 이는 국, 영, 수가 아니라, 철학 문제이다. 게다가 객관식은 오간데 없고 전부 서술형으로, 복합적 사고를 기반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논리를 펴야 하는 문제이다. 단편 지식만으론 택도 없는 것은 당연하며, 단기/속성 교육 과정, 소위 주입식 교육으론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제한된 시간 내에 풀어야 하는 시험이라는 속성 상 시험 시간 내에 새로이 고안해낼 수도 없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가치관의 자연스러운 서술을 통해서만 풀이가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질문은 자의이건 타의이건 이 세상을 사는 데 끊임없이 부딛히게 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핵심 질문으로 언젠가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상기 문제에서 보인 각 주제/용어의 사전 이해를 바탕으로 수험자의 생각을 묻는 문제이며, 이는 피교육자의 사고력을 증진시키겠다는, 궁극적으로는 피교육자 자신을 위한 인생 교육 목표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교육 목표가 실제 무엇이 됐건, 적어도 단편 사고의 '기술자'를 키우겠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반면, 울나라 교육 현실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영/수 만 놓고 보자. 서두의 논리를 강조하여 해석해보자면, 국어 - 일 시키기 위한 소통 수단, 문서 작성용 / 영어 - 기술 대부분이 외국에서 왔으니 / 수학 - 기술의 기반 언어가 수학인걸 . 물론, 이들 과목은 사고를 위한 핵심 도구란 점, 충분히 인정한다. 그럼 이들 과목을 기반으로 종합적 사고를 키우는 이렇다 할 과목, 프랙티스는 어디에?
이를 위한 대표 과목인 철학 - 매우 낮은 비중의 '윤리/도덕'이란 '속성 완결 - 단순 암기과목'의 하위 챕터로 밀려난다. 이즈음 되니, 말이 좋아 철학이지, 이론명 암기 - 해당 철학자 매핑 정도 이루면 성공이다. 게다가 철학의 주요 받침이자 인생 선배의 교훈 덩어리인, 인생살이의 핵심 기반인 '정체성 확립'을 이루게하는 '역사'는? 어느새 '선택' 과목. 하다못해 나 중고딩 시절만해도 역사는 필수 과목이었다(이 부분은 욕이 안나올래야 안나올 수가 없다. 썅 개 코미디). 위에서 논하는 과학, 정치, 권리 등은... 이를 통합할 철학이 그 모양이니 별 수 없다. 걍 각개 격파 과목.
이즈음 되면, 서두에서 논했던 음모론을 의미있게 받아들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위 음모론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전적으로 비 전문가인 나 마저도 이 정도로 문제 파악이 가능함과 동시에 공개적 비판이 가능하기에, 더군다나 울나라 교육시스템은 널리 알려진 주요 이슈거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위 비판은 한참이나 식상한 논리일 것이다. 더욱이 요즘 대학 입시에서 '논술'이 한참이나 강조되는 현 추세를 보면 음모론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식상해져버린) 비판을 재탕 안할래야 않을 수가 없다. 여전히 위 음모론이 상당 부분 먹혀드는 교육 현실, 그리고 이 현실이 수십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점, 나아가 선택 과목이 되어버린 역사 과목의 격하, 정신없이 보습학원에 쫓겨다니는, 자생적 사고를 할 겨를이 더욱 없어진 요즘 아이들.
과연 이 교육 환경이 개선되가고 있는 건지, 심히 의심스럽다. 논외이긴 하지만 개선은 커녕 악화되가고 있다는 건 뚜렷히 보인다. 이젠 개천에서 용날 일이 없다는게 일반 상식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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