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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ecdoche, NewYork(시네도키, 뉴욕)

Category
예술/인문 소감
Tags
Synecdoche New York
시네도키 뉴욕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
Adaptation
Created time
2011/12/25
나에게 블로그란, 이 블로그를 통한 나의 '글'이란, 나아가 나에게 '예술'이란, 해소되지 않은 감수성의 배출구, 배출물이다. 오직 고통이 따를 때만, 다른 무엇으로 해소되지 못했을 때만 이어진다. 이 말은, 현재, 명백히 고통 중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고통에 휘말리지 않은 정신으로 introspection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지겹게도 '자기, 인간 관찰/표현'에 천착한 Charlie Kaufman이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이 자신의 고통을 우려넣었는지 대강 상상 정도는 가능하다. Adaptation에서 대놓고 보여준 '자기'가 모자랐던가? 확인해보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역시 자전적인 영화임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실, 이즈음 되어서는 '자기 표현'이기보다는 '자아 학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나의 이 '자아 학대'란 묘사가 이 영화의 가치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brutal world - the real life. 오히려 자주 감춰지는, 왜곡되는, 따라서 그 실체에 대한 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곤 하는 타 '예술'에 비한다면, 아니, 비할 것까지도 없다. 오히려 표면적 왜곡과 과장, 잔인한 현실의 수집을 통해 현실로의 극단적 수렴을 이룬다는 것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그를 극찬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다. 사실 나는 Charlie Kaufman을 너무도 존경한다. 나의 인생 강령 중 하나인 '자기 표현'에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충실한 사람이기에.
존 말코비치되기나 Adaptation에서 보여주었던 일종의 '액자식 또는 재귀적 구성 - 뭐라 적당한 표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는 기본으로, 여기서는 아예 층 간 수직적 연결까지 이룬다는 점에서 이전 영화에 비해 한층 더 그의 기발함이 나아갔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1/3 지점 즈음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시뮬라크르 - 시뮬라시옹'이 생각나고, 이어진 대사에서 '시뮬라크룸'이란 용어가 튀어나온건 나의 '지적 나르시시즘'을 자극하는 사건?(이렇게 자뻑을 날리는 건 내가 아직 이 생소한 용어들에 대해 명확히 이해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ㅡㅡ;;). 여기에 양념으로 사용한 초현실주의 기법은,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였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과도한 주관적 해석이겠고, 아마 Charlie Kaufman 자신의 취향이겠지. - 여하간 그 장면들, 좀 해깔리긴 해도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그 시도, 성공했네!
아직 나의 아픔은 진행형이다. 언제 그 아픔이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재 피하지 않고 이렇게 '승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 지금 잘하는거 같다. 그리고 이 승화의 방법을 아래의 문구 등을 통해 암시적으로 일깨운 Charlie Kaufman에게 땡큐이다.
Everything is more complicated than you think. You only see a tenth of what is true. There are a million little strings attached to every choice you make; you can destroy your life every time you choose. But maybe you won't know for twenty years. And you may never ever trace it to its source. And you only get one chance to play it out. Just try and figure out your own divorce. And they say there is no fate, but there is: it's what you create. And even though the world goes on for eons and eons, you are only here for a fraction of a fraction of a second. Most of your time is spent being dead or not yet born. But while alive, you wait in vain, wasting years, for a phone call or a letter or a look from someone or something to make it all right. And it never comes or it seems to but it doesn't really. And so you spend your time in vague regret or vaguer hope that something good will come along. Something to make you feel connected, something to make you feel whole, something to make you feel loved. And the truth is I feel so angry, and the truth is I feel so fucking sad, and the truth is I've felt so fucking hurt for so fucking long and for just as long I've been pretending I'm OK, just to get along, just for, I don't know why, maybe because no one wants to hear about my misery, because they have their own. Well, fuck everybody. Amen. 
세상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오직 진실의 10%만 볼 수 있을 뿐이죠. 여러분이 행한 선택에는 수많은 작은 끈이 붙어 있습니다. 매 순간의 선택에 의해 당신의 삶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년간 그 사실을 모를 것이고 아마 그 이유를 절대 규명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걸 풀어낼 기회는 딱 한 번 밖에 없습니다. 단지 네 단절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해보세요. 사람들은 운명이란 없다고 하지만, 존재합니다. 그건 여러분이 만든 것입니다. 세상은 영겁의 시간으로 계속되지만, 당신은 단지 찰나의 순간에만 여기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죽음이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살아있는 동안 세월을 낭비하며 누군가 또는 뭔가로부터 상황을 괜찮게 만들 전화, 편지, 관심을 헛되기 기다리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죠. 혹은 일어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당신은 시간을 어정쩡한 회한 혹은 뭔가 좋은 것 - 고립감을 없애줄, 충족감을 느끼게 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할 - 이 생기겠지라는 모호한 희망 속에 보냅니다. 하지만 진실은,,, 저는 정말 화납니다. 진실은,,, 전 너무나도 슬픕니다. 진실은,,, 전 큰 상처를 너무나도 오랬동안 받아왔으며, 그 시간 만큼 괜찮은 척 해왔습니다. 오직, 살아가기 위해서. 오직,,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아무도 저의 비극을 듣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들 또한 자신만의 비극이 있으니까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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