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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박사의 ‘철학’

Category
自省(Introspection) / 세상살이
Tags
박문호
자연과학
Created time
2024/12/07
공부법 핵심: 대칭화, 모듈화, 순서화 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나의 (농담삼아) 나의 두 번째 교주님으로 ‘모시는’ 박문호 박사의 ‘철학’이다. 이 분을 만나는 주된 미디어는 유튜브 및 팟캐스트라 이렇게 글로 남기고파도 쉽지 않았는데, 오히려 몇몇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제목에 ‘철학’이란 용어를 넣었는데 그가 이 제목을 보면 식겁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철학이란 학문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목을 단 이유는 내가 찾은 용어 중 그나마 본문의 주제를 담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래 4개 링크는 해당 인터뷰 원문이고 이어지는 것이 내게 깊게 파고든 부분의 모음이다.

자연 과학에 관하여

자연과학 전공자가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을 파고드는 사례는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자가 양자역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보지 못했다.
자연과학을 모르는 것은 비극적 희극이다. 제한된 인식 내에서 살아가는 것. 인간의 특성은 매니아 기질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집중하는 속성이 있다. 그런 성질을 이해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을 깨뜨리기 힘들다. 매니아 기질을 컨트롤 하지 않으면 좁은 세계관에 갖히기 쉽다. 인식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자연과학적 사고이다.
Q. 자연과학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스스로 충분히 행복하다면? A. 말하자면 천년 전의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사는 것이다. 그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Q. 자연과학 도그마는 옳은 것인가? 좋은 것인가? A. 효과적인 것이다.
사실상 자연을 가장 빨리 만나는 방법은 서울의 빌딩에서 석회암, 대리석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철학과 종교에 관하여

철학과 종교는 뇌 활동의 부분이고, 뇌 활동은 자연현상의 일부이다. 그리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이다.
철학과 종교는 지난 3000년 동안 인류한테 질문만 던졌다. 그리고 대답은 감당하지 못했다.
종교나 철학을 통해서는 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답변을 얻지 못했어요. 일부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답을 제시할 뿐.
닫힌 시스템의 대표적인 것이 종교다. 유일신을 믿는 사람은 자연과학을 수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운동, 예술에 관하여

몸을 단련하는 것과 머리를 단련하는 것은 같은 비중으로 본다. 등산 등으로 체력을 다지지 않고 책만 읽는 것은 우선 50점을 까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몸의 욕망을 긍정해야 한다. 고대그리스 문화가 서구를 지배한 것은 몸을 숭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음악 감상과 같은 것은 뇌 자원을 엄청나게 사용하는 행위이다. 음악으로부터의 감동은 훈련하지 않고 쉽게 얻기 힘들다. 음악이 가진 상징과 패턴을 전두엽에 입력하고 훈련을 통해 그것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음악과 미술과 같은 예술이 좋은 것은 열린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측면에서 끝없는 곳까지 펼쳐져 있는 세상이 음악과 미술의 세계이다.

인간, 우주에 관하여

휴머니티는 학습에서 온다. 왜냐하면 학습은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언제든지 더 정확한 예측가능한 학설이 나온다면, 지난 도그마는 언제든지 양보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적인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환경에 의해 다시 리모델링 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과학 독서를 권유하는 것은 환경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환경적 존재이다.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결되고 더불어 살 때 더 본질적인 존재가 된다.
우리는 인간과 언어에 과잉 학습 되어 왔다. 지혜, 마음, 진리, 사랑, 이성과 같이 두루뭉술하고 개념이 불확실한 용어들만 사용하다 보면 생각이 뻗어나가질 못한다. 이성이란 용어 보다는 비교, 예측, 판단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존재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라 연결이다. 개체는 그 연결의 마디에 불과하다.

공부에 관하여

솔직히 암기를 무한 강조하는 이분의 주장은 오랜 시간 곱씹었음에도 이해가 안된다. 내 경험칙은 이해를 통한 논리 구조 파악을 이루면 저절로 암기가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짜고짜 암기하면 잊기 마련이고. 그러나 내가 못나서겠거니 싶어 일단 적어둔다. 참고로 그는 기억을 어마어마하게 강조한다.
우리의 감정은 기억에 비례해요. 기억이 없으면 감정이 없고, 감정이 없으면 운동을 하지 않아요. 행동은 감정과 욕망에서 나옵니다. 이건 기억에서 나와요. 단연코 운동을 통한 암기는 뇌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이해는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는 겁니다. 물리학이 이해하고 싶다고 이해되는 학문인가요? 이해하고 싶은데 안 되면 반대로 이해의 손을 놔버리면 됩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기억하세요. 이해는 내가 기본지식을 기억할 때, 기억이 형성될 때 창문에 바람이 들어오듯이 우리한테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해보단 기억이 먼저인거죠.
암기는 무조건 하는 게 아니고, 세 가지 조건이 맞을 때 하는 거에요. 유용해야 한다 /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 / 단순지식이 아닌 플랫폼을 구성할 수 있는 지식이어야 한다. 이게 바로 '유니버셜 랭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으면 올인해서 암기하는 겁니다. 자연과학 또한 문학예술과 달리 닫힌 시스템이라, 반복하다 보면 학문의 끝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공부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연구할 계획은 없는가에 대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일이건 블로그에서건 보내는 시간 대부분이, 나의 originality 보다는 누군가의 것에 대한 전달이기 때문으로, 종종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Q. 자연과학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공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에 대해 직접 연구하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A. 연구하거나 논문을 쓰는 일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몫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건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거예요. 특히 뇌 과학에 대한 논문은 아주 많이 무료로 게재되어 있습니다. 근데 아무도 보지 않죠. 제가 수십 편의 논문을 쓰는 것보다, 많은 논문을 읽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더 중요한 일입니다. 구슬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구슬로 목걸이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역할이 분명히 다르죠. 근데 99%의 사람들이 구슬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슬을 가지고 목걸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그런데 저는 목걸이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