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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만에 소설을 읽은 듯 하다. 마지막 소설은 2~30대에 읽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던 듯 싶다. 보게 된 계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노벨 문학상 소식 때문이다. 마침 읽기 딱 좋은 휴가 시점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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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을 그래왔듯 읽는게 아니라 들었는데, 가면 갈수록 이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5장부터 마지막은 읽었다. 처음부터 그러하지 않았음이 후회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에는 주제가 너무도 무겁다. 작가 뿐 아니라 작중 인물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몰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소년은 실존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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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와중에 4장을 지나던 어느 지점부터는 땀과 눈물이 함께 떨어졌다. 몰입도가 상당했기에 평소 같으면 운동이 끝난 직후에도 듣기를 이어 나갔겠지만, 무거워진 마음에 함께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듣기 시작하기까지는 며칠이 흐른 뒤였다. 그 마음 상태로 복귀하는게 꽤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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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의 아픔은 5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순간 또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한강이 시인이었기에 심상 생성에 탁월하다는 평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이를 전할 줄은 생각 못했다. 가장 가슴을 쓰리게 만드는 그 부분은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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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이입이 뒤로 갈 수록 심해졌는데, 이는 독특한 등장인물 배치에 기인한 듯 보인다. 작중 인물들은 잊혀질 때 즈음이면 다른 이를 통해 언급되며 실상이 전해진다. 이 역시 간접적 접근으로 감정 증폭의 요소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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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지막까지 감정 증폭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리가 안된 것이냐 싶으면 그렇지도 않고. 놀라운게, 소설 직후 이어지는 에필로그는 이를 한번 더 강조, 아니 증폭된 감정을 확정지으려는 듯한 움직임이다. 실화에 기반했던 것이다. 단순 실화도 아니고 작가 개인과 연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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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마침 다녀온 내소사(來蘇寺) 템플스테이 의 위치가 전남이었다는 점은,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템플스테이 가이드가 전남대 출신에 5.18에 관한 많은 기억과 경험을 가진 분이었다는 점은 묘한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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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소설의 힘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간 꽤나 많이 5.18에 관한 생각과 미디어를 마주쳤지만, 당사자들의 아픔을 이만큼 느낀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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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득 전두환 손자, 전우일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간의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삶,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떳떳한 삶에 대한 갈망이 그 자리까지 오게 만든 원동력일 터이다. 그 고통의 원인을 끈기있게 쫓고 찾아내고 직시했기에 그 혼돈 속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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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우일의 나머지 가족들 역시 그와 유사하게 괴로와 하겠지만… 그와는 달리 그대로 파묻혀 살아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와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악인으로 치부하고 정리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긴, 그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들 나머지 가족들과 같은 종자가 넘쳐 흐른다. 안타깝게도 사회 지도층에 특히나 포진해 있다. 못다한 친일파 청산의 후유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