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대웅보전 한컷
Prologue
늦은 여름휴가로 다녀온 내소사(來蘇寺) 템플스테이 후기이다. 2박 3일 일정으로 돌아온 바로 그날 작성하는 것이니 꽤 따끈한거다.
템플스테이에 내소사로 가게 된 동기는 아래 후기 주인장의 추천으로. 휴가지로 딱히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던 터에, 예전부터 템플스테이는 관심있던터라 딱이기도 하였고. 누군가 혼자 여행이라서 좋겠다 했는데, 난 혼자라서 혼자간거란 점은 함정. 누군가 함께 있었다면 여길 떠올렸을까는 상당히 의문이다.
내소사 템플스테이 사이트는 조계종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와 연계되어 있기에 여타 다른 절의 그것도 가능하다. 근데 걍 내소사로 간 이유는 추천이 가장 크겠지만, 무엇보다 저 사진에 보이는 대웅보전에 단청이라 불리는 칠이 안되어있단 점이 확신을 주었다. 오랜 절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 때문.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은 바로는, 주지 스님이 일부러 단청을 안하고 보존재만 바르게 했다고. 센스있다.
Body
첫날 3시20분 오리엔테이션에 맞춰 도착. 오리엔테이션은 템플스테이 및 절 소개 정도이다. 첫날은 나 이외에 소통에 관심없어 보이는 여자분 한명 뿐. 둘째날이 되서야 독일인 남매에 노르웨이 세 자매(?), 한국인 자매 또는 모녀 둘로 늘어났다. 별도 활동이 없는 코스였기에 절밥 먹고나면 딱히 할게 없다(휴식형. 체험형은 예약 당시 이미 만석이라서리). 걍 가이드 분 및 이들 참가자들과 꽤 유명한 전나무숲길을 산책하는 것 뿐.
꽤 유명하다는 전나무숲길. 사진과는 달리 상당히 긴데, 확실히 분위기 있다. 이만한 길, 분명 쉽지 않아 보인다.
가이드 분과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외국인 가이드 전문이라고. 함께 숙식을 하면서 가이드 함에도 놀랍게도 일종의 봉사활동이란다. 따라서 급여가 매우 작다고. 국가 보조를 받는다는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다.
읽으려 가져온 책 중 하나가 소년이 온다 by 한강 이었는데, 마침 이 분이 전남대 출신으로 선배들에게 5.18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거니와 이미 읽었다고. 오히려 한강보다도 부친인 한승원 작가를 더 잘 아는데 전라도 출신이기 때문이란다. 어쩌다 한강이 5.18을 다루었지 싶었는데 이해가 가는 지점이다.
광주에서는 5.18을 기려 중고생 대상으로 주먹밥을 먹는 의식이 있다는데, 이러한 의식이 타 지역과는 괘리가 있는게 아닐까 하여 걱정을 하신다. 난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셔야 한다, 서울-강남에서 살았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그런 공감을 가질 기회가 있음에 더 운좋게 생각하셔야 한다고 대답했다. 진심이다.
첫날은 책 좀 끄적이다 잠들고 둘째날은 등산에 들었다. 오전 9시에 있는 108배는 신청했다가 결국 안했는데, 연습삼아 3배만 해봤는데 다리가 넘 아팟기 때문이다(다리통이 두꺼워 무릎꿇는데 수준 이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템플스테이는 절 외부로 나가선 안되기에 등산도 안되는 것이란다. 다행히 가이드분께서 눈감아주신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점심 시간을 놓쳤기에 내려오자마자 절 밖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는데, 당연스럽게 이 역시 규칙 위반. 이 것도 눈감아 주신 덕분에… 웃으시면서 딱 한마디 하신다. “규칙을 골라가며 어기셨네요.”
초록점이 출발, 붉은점이 종료 지점. 이들 점이 위치한 허였고 자그만 평지가 내소사다. 꽤 많이 걸었다는 뜻.
얼추 5시간 반 동안 중간 식사 없이 움직인건데, 하루가 지난 현재 다리 전체에 알이 제대로 배겼다. 움직이기 넘 힘들다.
등산은 다이어트 겸 해서 걍 아무 생각없이 오른 건데, 알고보니 여기가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꽤 유명한 내변산 등산코스였다. 관음봉과 직소 폭포, 그리고 분옥담은 코스의 하이라이트. 원래 등산을 즐기지도 않았거니와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가서 그런지 죄다 좋았다. 특히 직소 폭포에서 이어지는 거대한 계곡 속 호수인 분옥담은… 이런건 우리나라에선 특히나 처음이라서 그런지 더욱 더.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 가는 길에서 감탄하며 보았던 퓌센의 에메랄드빛 호수가 연상될 정도(솔직히 그 호수만큼 놀랍진 않다. 걍 볼만한 정도다).
관음봉에서 보이는 변산반도 해안가. 누가 서해안 아니랄까봐 죄다 뻘이다. 좌하단 바위 위로 내소사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난간에 가렸다.
직소폭포 전망대에서. 직소 폭포도 볼만하지만 주변 경관이 더 괜찮다.
분옥담 전경. 호수라 부르기에는 작지만 직소 폭포의 작은 물줄기에서 이렇게 크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얼핏 놀라움도 느낄 수 있을 정도.
아침 7시반에 출발해서 내려와 점심까지 먹고 방에 돌아오니 3시 정도. 바로 쓰러져 자고 보니 밥먹을 시간. 절밥 사진을 깜박했는데, 역시나 고기 없이 잡곡밥에 나물, 김치 등등이다. 군대 시절 처음 경험했던 절밥의 감동을 기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딱히 일상의 그것과 다를 건 없었다. 하나 놀라왔던건 콩으로 만든 동그랑땡이었는데 맛이 약간 다르지만 거반 비슷하다. 역시나 설거지도 직접 해야하는데 세제가 없기에 기름을 안써서 그런가 했다. 근데 담날 주방을 슬쩍보니 식용유가 보인다… 그래도 되는건지는 모르겠는데 하긴 기름 없으면 조리를 어떻게 할겨.
밥먹구 산책 중에 외국인들과 말좀 나눴는데 주로 독일인 남매와. 이들 뿐 아니라 노르웨이 자매들 역시 키가 커서리, 너희들 국적이 이를 말해준다 했더니만 멀리서 내게 관심을 보이며 웃는다. 독일 남매의 경우, 여동생이 이대 교환학생으로 왔는데 오빠가 놀러 온거라고. 담날 홍도와 흑산도로 갈 예정이라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데 배편 등지에 영어 가이드는 잘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북유럽 애들이라 그런지 모르는 이와의 대화에 좀 약해 보인다. 예전 유럽 배낭 여행 때는 못느꼈는데.
방에 들어와 가져온 또다른 책인 침팬지 폴리틱스 를 읽다 잠들었다. 이게 책이 재미없어 잠든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누워서 보다보니 의지와는 반대로 잠들어 버린거다. 책상이 없기에 벽에 기대서, 매트리스를 깔고 앉아 보았지만, 결국 불편해서 눕게 된다. 허리 뽀아진다. 해서 가이드에게 좌식의자를 건의했지만 쉽진 않을 듯. 돌아온 대답은 ‘걍 누워서 보세요’. 이미 그랬는데 잠들어버린다고 답했더니만, 이에 대한 응답은 ‘그럼 좋은거죠. 쉽게 잠드는 게 얼마나 복받은건데요’.
내가 쓴 독방. 방안의 물품이라곤 저 탁자와 매트리스, 이불, 배개가 전부다. 이외에 선풍기가 있는걸 봐선 에어컨은 없었던 듯(기억에 없다). 하지만 개별 난방이다. 꽤 따뜻하다.
결국 새벽에 깨서 오랜 뒤척임을. 아침 식사시간이 어여 오길 기다리는 맘 와중, 테슬라 20% 폭등 소식에 기쁜 맘으로 다시 잠자리로.
담날, 전날과 똑같이 아침 식사와 산책을 마친 후 바로 떠나면서, 내소사 템플스테이를 마쳤다.
떠나기 전 아침의 내소사 전경
Epilogue
템플스테이라 해서 별거 없이 내가 딱 기대한 그 정도의 생활 상 패턴 변화였다는 정도. 먼가 도가(道家)스러운 새로운 무엇을 기대하거나 마음가짐을 다질 법도 하지만, 난 이미 도가적 가르침에 익숙한지 꽤나 오래다(그리 살지는 않지만). 오히려 책상과 쇼파, 그리고 침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단게 나의 엉뚱한 깨달음?
(소감이 템플스테이 별루다… 란 느낌으로 흐른듯 한데, 그건 절대 아니다. 여행이란게 망치기 쉬운 무엇임을 감안하자면, 적어도 80점은 먹고 들어간다. 템플스테이란 것이 불러 일으키는 일반적 기대를 대부분 만족한다는 뜻)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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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없다. 덕분에 10G LTE 할당량 금새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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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듯해서 독방 신청을 일부러 안 했음에도 사람이 없어 자연스리 독방을 썼다. 근데 쫌만 있어봐도 독방이 무조건 좋겠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방 하나에 모르는 사람과 둘이서 쓴다는건 어릴 때나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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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게이트에 바로 붙어있는 전주식당의 ‘산채 비빔밥’. 내가 먹어본 ‘산채 비빔밥’ 중 잴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