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일상이건 일이건 간에 상시 마주치는 질문,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자원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질문에 담긴 두 가지 성질인 효과성과 효율성 간의 관계, 그리고 해결과 해소에 대한 나름의 정리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효과성보다 덜 중요해보이는 효율성이 효과성의 결과물인 ‘해결’보다 더 나은 무엇, 특히 ‘해소’를 이끈다는 거다.
해결(solution)보다 해소(dissolution)
일반적으로는 효과성(원하는 결과의 획득)을 우선 순위에 두고, 그 이후 효율성(’최소’한의 자원 사용)을 따지는게 자연스럽다. 이는 “자원 적게 쓰고 결과를 못 얻는 것과, 결과를 얻되 자원을 많이 쓰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하냐”란 질문을 던져보면 바로 드러난다. 아래와 같은 S/W 프로그래밍계의 유명한 격언도 있고(아래에서, 당연스럽게도, 최적화는 효율화의 동일한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이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자원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란 문제의 해결(solution)에 초점을 둔 논리이다. 헌데 만약 문제 자체를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문제 풀이의 필요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해결’보다 나은 무엇임은 자명하다. 우리는 필요가 없는 일에 애쓰는 걸 가리켜, 전문용어로 ‘삽질한다’라 표현한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 풀이 필요 자체의 제거를 가리켜, 해소(dissolution)라 표현한다. 내가 아니라 (그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이 그리 칭했다고 (나의 둘째 교주님이 알려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해결(solution)과 해소(dissolution). 아래는 ChatGPT의 요약.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 (논리철학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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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문제를 해결(solution)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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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언어를 명확히 정리하여 철학적 질문에 명료한 답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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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언어의 구조를 "거울"처럼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 (철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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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문제를 해소(dissolution)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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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질문은 언어적 혼란에서 비롯되며, 그 맥락을 이해하면 문제는 사라진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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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세계는 고정된 대응 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유동적으로 작동한다고 이해했습니다.
첨언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이 후기에 해소를 논하게 된 이유는 전기 시절에 열심히 ‘해결’에 힘을 뽑았더니만 알고보니 ‘해소’되면 굳이 ‘해결’하려고 힘쓰지 않아도 되었음을, 알고보니 죄다 삽질이었음을 깨달아, 그 허탈함을 느껴서 그런거 아닐까 싶다. 모르긴 몰라도.
효율성이 해소를 이끈다.
위 논의는 문제 자체를 부정한 듯한 넌센스 또는 괘변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문제’에는 그 문제 발생의 원인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해소는 그 원인 수준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실제로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은 real world에서 자주 사용되는 최선의 안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해소’ 방안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느냐로 옮겨가는데, 이는 ‘효율성으로의 집중’이 아닐까 하는게 이 글의 핵심이자 주장이다. 이는 효과성의 한계를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효과성으로의 집중은 문제 자체가 그어논 경계 안에 초점이 머물도록 만든다. 이로 인해 경계 밖의 해결안, 즉 해소는 맹점으로 남기 마련이다(이를 가리켜 언론 비평에서 자주 언급되는 프레이밍(framing) 효과라 칭하는 듯 하다). 반면 효율성으로의 집중은 그 자체가 갖는 열린 속성으로 인해 효과성이 그어논 경계, 프레임 이상을 상상 가능하도록 한다. 효율성 - ‘더 나은 무엇이 없는지?’란 질문에 최종 종착지가 과연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다.
효율성은 자연의 근원적 속성
이러한 효율성에 대한 강조가 사실 우연이 아닌게, 알고보면 효율성은 무려 ‘자연’의 근원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이를 따르는게 아닐까 싶다(근래에 흔히 쓰는 ’가성비’란 용어를 생각해보자). 이에 비하자면 효과성은 그저 인간의 한정된 관점이 투영된 무엇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투영된 무엇만 보는 인간이기에
‘효과성’과 ‘효율성’ 중 집중 우선 순위에 있어서는 여전히 ‘효과성’이 먼저임을 부인 못하겠다. 반대 경우도 수차례 생각해보았지만 항상 죽도밥도 안될거란 결론에 이른다. 이게 어찌보면 당연한게, 나 역시 투영된 무엇만 보도록 생겨먹은 인간이고, 그 투영마저 없으면 효율성이고 뭐고 간에 시작조차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효율성이 왜 자연의 근원적 속성인지를 과학이 밝혀낸 예로, 사실 이 글을 쓰게된 동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의미를 살리기 위해 엄밀성이 떨어지는 직관적 표현을 사용했다(내가 이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지라 엄밀하게 표현도 불가능하고. 하지만 큰 틀에서 틀리진 않으리라 믿는다). 이 중 최소 작용의 원리는 최근 각광받는 신경과학 이론 중 하나(라고 하는) Free Energy Principle(FEP)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기도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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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작용의 원리: 자연은 가장 경제적인(효율적인) 경로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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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이동하려는 자연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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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관점: 에너지를 덜 쓰는 시스템, 즉 에너지 효율적인 시스템이 더 오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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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수 e: 최적화에 관한 여러 시스템에서 등장하는 상수. 시스템의 가장 효율적인 변화 속도
여담: 이 글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 - 팟캐스트
AI 학습 도구인 구글 NotebookLM으로 생성한 것인데, 내 생각을 정확히 읽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내 생각을 더 잘 아는 듯 느끼게 만들기도. 그저 AI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제프리 힌튼은 AI가 앵무새가 아니라 정말로 텍스트를 이해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는다. 그의 말대로 실존적으로 AI가 무섭다.
우리말로 번역한 스크립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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